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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영주/영주 FEELING

To Combat Modern Ills, Korea Looks to the Past~!

 

To Combat Modern Ills, Korea Looks to the Past

현대병폐를 치유하기 위하여 한국은 과거를 돌아본다.

 

- 뉴욕타임즈 영주 선비정신 집중 조명 기사 번역 -

Students attended a class at Sosu Seowon, a complex of 11 Confucian lecture

halls and dormitories in the town of Yeongju, 100 miles, southeast of Seoul.

 유교강좌가 이루어지는 강의실 및 숙소로 이루어진 11개 복합공간인

서울에서 100마일 떨어진 영주시 소수서원에서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박석홍 연구원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원, 시간이 정지된 세상에서 밖을 바라보면, 그저 야수들이 다스리는 세상일 뿐이다. 그는 최근의 뉴스를 그 증거로 지적했다. 젊은이가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험한 말을 하고, 아이들은 학교폭력이나 엄청난 학업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투신을 한다. 박선생은 11개의 유교를 가르치는 강의동과 기숙사동으로 이루어진 소수서원의 학예관장으로 이곳은 1543년 처음 문을 연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100마일 혹은 160킬로미터의 위치에 있는 곳이다.

유교는 “구식”이란 낱말과 유의어가 된지 오래된 한국에서 사람들은 박연구원의 최근 유교의 가르침에 흥미를 일깨우는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며 좋아하고 있다. 그 가르침은 노년층이 청년층에게 부족하다고 믿는 공동체의 화합과 어른을 공경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이곳에 와서 유교 예절 과정을 받은 학생은 꾸준히 증가해 1년에 15000명 정도이다.

그밖에 150여개의 다른 서원 혹은 유교 교육기관에서도 강의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고 박성진 한국서원연합회이사는 말했다.

나는 이곳에 왔기 때문에 할아버지께 꾸중을 덜 듣게 될 것이라고 서울에서 온 6학년 강규현 군은 설명했다.

지난 어느 월요일 규현군의 어머니는 그와 그의 누이를 버스에 태웠다. 버스는 40명의 초등학생들을 서원 마당으로 내려놓았고 아이들은 3일동안 유학생들의 생활상을 모델삼아 예전에 사라진 공식적인 수업내용 및 식사, 차예절, 어른들게 하는 존댓말등과 같은 가르침을 받게 된다.

바닥에서 절을 하는 연습을 한 규현의 여동생 10살 강채원양은 “꿇어앉아 있어 무릎이 너무 아파요” 라고 말하면서도 적어도 이제 인사하는 법은 배웠으니 할아버지가 기뻐하실거에요“ 라고 말했다. 

한국은 10년 전 아시아금융위기로 경제적 충격과 실업·자살 증가로 힘든 시기를 겪기 시작하며, 그러면서 1950~53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더 큰 수난을 겪은 어르신들을 지탱시켰던 가치를 잃었음을 뼈저리게 느꼈고, 옛것을 되새기는 이와 같은 분위기는 그 직후부터 시작됐다.

최근 몇 달간 학교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한 학생들이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자,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군인들이 잇따른 자살도 대북경계를 징집군인들에게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그 같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사찰들은 템플스테이를 제안했으며 이 곳에서 도시인들은 명상과 평정의 시간을 찾을 수 있었다. 해병은 “서바이벌 캠프”를 운영한다.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은 장애물 코스를 지나면서 동료애와 끈기를 기른다.

박 연구원의 현 학교 체제에 대해 강한 경고를 하고 있지만 서원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한다고까지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서원에서 배울 것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수 세기 전 소나무, 개울, 연못으로 둘러싸인 이곳 캠퍼스에는 전국 각지에서 선택된 소년들이 외부와 떨어진 삶을 살았다. 그들은 유교고전을 읽고 자연에 대한 시를 읊었다. 그들의 하루는 유교현자들을 배우는 사당을 찾는 것으로 보내졌다.  그들은 하루동안 읽은 것에 대한 스승의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2번 절한 뒤 대답했다.

전성기 때 그 같은 사원은 전국에 700개가 넘었다. 서원은 조선왕조(1392-1897) 통치사상인 유교를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을 수행하고 공직에 나갈 인재를 훈련시켰다.

서원과 유교에 대한 관심이 다시 대두되는 것은 모순이다. 오랫동안 많은 한국인들은 엄격한 위계질서문화, 그리고 무수한 여아낙태로 이어진 남아선호사상과 같은 것을 문제 삼으며 유교전통으로부터 담을 쌓아왔다.

실제로 급속한 경제발전의 원천이지만, 학업성적압박에 따른 병패로 비난되는, 한국 부모들의 광적인 교육열의 근원은 서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원에서는 공직시험 준비에 고전 외우기를 중시했고, 사회적 지위와 학업을 동일시하는 전통을 정착시켰다.

서원은 사회 지도계층인 양반 남자에게만 허락됐다. 국가는 젊은 양반들이 무상으로 장기간 학업에 전념하도록 지원했다. 1865년 47개를 제외하고 전부 철폐되기 전까지 서원은 부패와 파벌정치의 온상이 됐고, 결국 조선왕조는 쇠약해져 머지 않아 1910년 일본에 합병되기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 아래 한국은 서구식 커리큘럼을 갖춘 보통교육제도를 도입했다. 일제강점기는 1945년까지 지속됐다. 서원은 전통의식을 가진 한국인들이 유교 현자를 기리는 의식을 행하는 사당으로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한국역사에서 서원의 중요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한국은 옛것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역사학자이며 서울에 있는 전 이화여대 총장인 이배용 위원장은 서원이 제 역할을 하던 시절, 인격형성과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현재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위원장은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가브랜드위원회는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제고시키는 업무를 맡고 있다. 1월 유네스코는 소수서원을 포함해 9개 서원을 잠정 목록에 포함시켰다.

흰 도포와 높게 솟은 갓을 쓴 옛 유교학자들은 소수서원에서 오래전 사라졌지만, 대신 관광객들이 유교격언으로 장식된 강당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서원 체험에는 관광객들을 위해 볏짚 짜기, 소달구지 끌기, 유교경전 읽기 등 오랜 생활상을 근처 마을(村)에서 재현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윤리와 역사 대신 영어와 수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쓰레기 교육”에 대해 몇 시간이고 그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한국에서 유교를 전파하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지난 20년간 그는 공무원과 관광객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유교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는 모든 기회에 매달렸다. “그 사람들은 내 말의 10분의 1만 받아들일 뿐이다. 그들은 나를 미친 사람, 지나치게 보수적인 사람, 시대에 뒤쳐진 사람인양 쳐다본다. 따돌림 받는 기분”이라고 그는 말했다.  

 

 

Sosu Seowon is Korea’s oldest private Confucian academy. As many as 15,000 a year students attend the school per year.

 소수서원은 1년에 15,000명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한국의 가장 오래된 사액서원이다.

 

 

During a “seowon stay,” students can sample the life of Confucian students of old, including dinner and tea table etiquette and proper ways of addressing one’s parents.

 “서원체험”에서 아이들은 옛 유학생들의 생활상을 모델삼아 식사, 차예절, 어른들게 하는 존댓말 등과 같은 가르침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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